■ 고발┃반디 지음. 다산책방 펴냄. 276쪽. 1만2천420원

"북한에 살고 있는 익명의 작가 '반디'가 쓴 반체제 이야기들은 베일에 싸인 독재 정권에서 나타난 매우 보기 드문 작품이다. 전 세계적인 문학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이다."-영국 가디언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13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지며 북한체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5일 출간(개정판)된 北 반체제작가 '반디'(필명)의 작품이 국내는 물론 해외 문단에서까지 주목받고 있다.

2014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후 3년 만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반디의 소설집 '고발'(다산책방)은 오는 3월 영미권을 비롯한 전세계 동시 출간을 앞두고 있다.

'북한의 솔제니친'이라 불리는 반체제 작가 반디의 최초 원고를 충실하게 살려 작품이 지닌 문학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이번 작품은 3년전 국내에 소개됐을 때만 하더라도 작품이 지닌 가치와 의의, 문학성 등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당시에는 작가가 탈북민이 아닌 직접 북한에 살고 있는 작가라는 점과 원고의 반출 과정 등이 화제를 모았다.

이렇게 냉담했던 국내 반응과 달리 이 작품에 대한 해외 반응은 뜨거웠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에 비견되며, 지난해 프랑스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일본, 영국, 미국, 캐나다, 독일, 스웨덴 등 전 세계 20개국과 판권 계약을 맺기에 이르렀다.

문학전문지 '더밀리언즈'는 '2017년 가장 기대되는 작품' 중 하나로 '고발'을 뽑았으며, '채식주의자'의 번역가로 잘 알려진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한 영국판은 2016년 영국 펜(PEN) 번역상을 수상해 문학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올 3월 말에는 '고발'을 번역, 출판한 전 세계 20개국 출판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국제 콘퍼런스가 서울에서 열린다.

단편집인 '고발'의 책 내용을 들여다보면 ▲몰래 피임약을 먹고, 자신이 출근한 뒤에 또 밥을 짓는 아내를 의심하는 남편 ▲여행증 없이는 이동이 금지된 상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노모의 임종을 지키려는 아들 ▲창밖으로 보이는 마르크스와 김일성의 초상화에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 ▲큰아버지로 모시는 이에 대한 믿음과 당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재원 ▲배우인 아들이 보여준 현실의 부조리극 앞에 혼란스러워하는 아버지… 등 고발에 수록된 일곱 편의 이야기에는 북한 체제에서 생활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핍진하게 그려져 있다.

작가 반디는 이런 평범한 남녀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끔찍한 부조리를 보여줌으로써 절망과 암흑의 끝에서도 지속되는, 지속되어야 하는 인간애와 희망을 역설한다.

출판을 담당한 다산책방은 "고발은 완전히 고립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초상화다. 동시에 인간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유지할 수 있고, 생각의 자유를 요구하는 용기는 그것을 억누르는 힘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다산책방은 반디 최초 원고를 충실하게 살렸다며 그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낯선 표현과 단어들에는 주석을 달았고 가독성을 위해 북한식 표기는 한글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최소한으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반디의 작품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르면 다음달 첫 시집도 출간될 예정이다. 시집에는 북한 내 인권 등을 다룬 시 50편이 실리게 된다.

한편 원고를 입수, 반디를 대리해 '고발'의 저작권을 대행해온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는 "책의 판매로 발생하는 인세 수입의 50%를 반디와 그의 가족 및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구명 활동 등을 위해 적립하고 있다"며 "나머지는 책의 홍보와 장학금 지급에 써 지난해 말에는 탈북자 가정의 어린이 8명에게 '반디통일장학금'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