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 언론보도 > 북송될 뻔한 탈북 가수, 탈북자 위한 노래-[조선일보] [행복한통일로 홍보대사 김충성]

밤 10시에 가까운 늦은 시각이었지만 주한 중국대사관(서울 종로구 효자동) 맞은편 간이 텐트 안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탈북자 가수 김충성(35)씨도 그곳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지난 2일부터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 북송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 시위를 하고 있다.

"중국에 머무를 때 두 번이나 북송될 뻔했습니다. 주변 도움 덕택에 기적적으로 위기를 넘겼죠. 그때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요덕스토리'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했고, 탈북자들이 만든 영화 '선택'의 O.S.T를 작곡하는 등 음악인으로 활동 중인 김씨는 최근엔 같은 탈북 가수들과 전국을 순회하며 통일 염원 공연을 하고 있다. 오는 31일엔 GK전략연구원이 북한 인권 실태를 알리기 위해 여는 '휴먼 콘서트'에도 참여한다. 탈북 가수들과 함께 통일 음반도 낼 계획이다.

그는 북한에서도 대중가요인 '생활가요'를 부르던 가수였다. 평양에 가 성공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가 6·25전쟁 때 국군을 도운 과거가 있어 꿈을 포기했다. 축구 감독인 아버지, 리듬체조 감독인 어머니의 수입은 보잘것없었다. 3형제 중 장남인 그는 고향 함흥에서 노래를 부르는 틈틈이 소금·생선장수 등 별별 업종을 전전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28일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탈북 가수 김충성씨. 그는“북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김지호 객원기자 yaho@chosun.com

그런 그에게 2001년 한 지인이 "이곳에서 금을 싸게 사서 국경에서 비싸게 팔아보자"는 제안을 했다. 당시 북한에선 주민들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기관차 변압계, 공장 선반, 전화선까지 잘라 파는 상황이었다. 출근길에 봤던 이웃이 퇴근길엔 굶어 죽어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공장 부품들이 남아나질 않자 북한 정부는 "쇠붙이를 판매하다 걸리면 총살형에 처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김씨는 양강도에서 금 거래를 하다 당국에 시범 사례로 현장 적발됐다. 처형을 하루 앞두고 열쇠고리로 독방 쇠창살 문을 13시간이나 뜯어낸 끝에 새벽 2시30분 극적으로 탈출했다. 고향에 돌아갈 수도 없어 압록강 앞에서 한참을 통곡하다 문득 든 생각이 '기왕 이렇게 된 거 강을 건너 중국에 가자'는 것이었다.

장마철에 어렵게 헤엄쳐 중국 국경에 도착했다. 물살에 신발도 다 떠내려가 일주일간 맨발로 헤매다 우연히 탈북한 처녀 둘을 만나 함께 김치장사를 하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중국에서 김치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조선족이기 때문이다.

며칠 뒤 두 발에 생긴 왕발 울만 한 물집 때문에 일행에 한참 뒤처져 걷고 있노라니 저 앞에서 두 처녀가 중국 인신매매 상인에게 붙들려 차에 타는 장면이 보였다. "명색이 사내라는 게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차가 사라지는 걸 볼 수밖에 없었어요. 무력감이 말 그대로 뼈에 사무쳤죠."

하지만 남은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미리 배워 두었던 "밥 좀 주세요" "배가 고파요"라는 생존 중국어로 며칠간 더 방황하다가 드디어 시장에서 김치장사를 하는 조선족 아줌마를 만났고, 탄탄한 중국 내 조선족 '김치 네트워크'를 통해 차비를 얻어 탈북자들을 수용하는 교회 쉼터까지 갈 수 있었다.

처음엔 남한에 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서 3년간 머무르는 동안 탈북자 신분 때문에 두 번이나 공안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나오는 경험을 하며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싶었다. 다시 한 번 목숨을 걸고 중국 국경에서 베트남으로 넘어가 2004년 7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입국했다.

아직도 그의 삶은 고달프다. 기자를 만나기 이틀 전 그는 북한서 국제전화로 "당신 막내동생이 탈북하려다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도 겁난다고 숨어 있을 순 없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으니까요."

"3년간 두 번의 북송 위기, 주변 도움으로 모면했죠… 그 은혜 지금 갚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