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북한 주민은 정권에 억압돼 눌려만 있는 게 아니라 탈북하거나 장사를 하는 등 체제에 대항하고 있다. 북한을 고발하는 익명의 한 북한 작가가 쓴 소설이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출간돼 영광스럽다."

프랑스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연구해 온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피에르 리굴로(72) 사회사연구소 소장은 14일(현지시간) 파리 시내에 있는 한 카페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고발'은 북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작가 반디(가명)가 쓴 것으로 알려진 단편 소설집으로, 탈북자인 작가의 사촌 동생을 통해 국내에 반입돼 지난 2014년 한국에서 출간됐다.

이 책의 번역본이 나온 것은 이번에 프랑스가 처음이다. 프랑스 번역본에서 리굴로는 '작은 반딧불이지만 희망은 크다'는 제목의 발문을 쓰면서 북한 사회를 고발한 이 책에 주목했다.

북한에 사는 반디는 1990년대 북한을 배경으로 한 7편의 단편에서 계급차별과 연좌제로 고통받고, 감정을 표출할 수 없는 북한 주민들의 연극적인 삶과 북한 지도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악한 일들을 고발한다.

리굴로 소장은 북한 인권문제를 두고 한국 사회에서 좌·우가 대립하는 상황에 대해 "인권 문제에 좌·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리굴로는 탈북자 강철환 씨와 함께 쓴 북한 요덕수용소 생활 수기 '수용소의 노래'(영어판 제목 '평양의 수족관:북한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10년')의 공동 저자로 각종 저술을 통해 북한 인권상황을 꾸준히 비판해 왔다.

 

북한 작가 소설집 '고발' 프랑스 출판 기념 기자회견(파리=연합뉴스)

-- 책 '고발'을 소개해준다면.

▲ '고발'은 2014년 한국에 출간된 이후 미국, 유럽에서 큰 관심을 받았으며 이번에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단순히 북한 사회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인의 삶을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독자가 북한의 삶에 직접 들어가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책 발문을 쓰는 등 프랑스판 출간을 도왔는데.

▲ 북한 주민 삶에 대해 나누고 싶었다. 금지된 내용의 글이 북한에서 외부로 유입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 생각해 발문을 쓰게 됐다. '고발'이 외국에서 번역 출간된 것은 프랑스가 처음이라 영광스럽다. 소설에도 나오듯 북한 주민은 정권에 억압돼 눌려만 있는 게 아니라 탈북을 하거나 장사를 하는 등 대항하고 있으므로 북한 주민을 지지한다는 뜻에서 참여하게 됐다. 이번에 번역본 프랑스 출간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이 책에 관심이 생겼으면 한다.

-- 일부에서는 이 책의 문학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 한국어를 못하니 이 책의 문학적 수준에 대해 논할 자격은 없다. 번역본으로 읽긴 했지만, 은유와 상징, 회상, 유머 등 문학적 부분에서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정교하게 잘 쓰인 것 같다. 북한의 전기난으로 김일성, 김정일 제단의 전등이 꺼지자 노동당 간부가 안절부절못하는 블랙 유머 등은 (구소련의 유명 작가인) 알렉산드르 지노비예프를 떠올리게 한다.

-- 처음 북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 30년 이상 전체주의, 공산주의 체제를 연구했으며 현재 사회사 연구소장이기 때문에 전체주의, 공산주의 주요국가인 북한을 자연스럽게 연구하게 됐다. 강철환 등과 의견을 나누면서 접촉해 왔다. 전체주의, 공산주의 국가는 이제 북한과 쿠바만 남았다. 북한과 한반도에 큰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북한 체제의 끝과 한반도 미래에 관심이 있다. 내년 북한에 대한 책을 낼 생각이다.

-- 북한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제재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 제재가 북한 정권보다는 주민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 북한 정권은 국민의 삶과 행복에 관심이 없다. 제재가 있으나 없으나 주민은 고통 속에서 산다. 그리고 국제 제재도 북한 주민이 아니라 정권 제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북한을 내부로부터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변화가 가능한가.

▲ 북한 사회의 변화가 미약하나마 지속하고 있다. 암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으나 북한 정권은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중국에 있는 지인과 통화할 수 있고 중국과 한국의 비디오 영상물이 유입되는 등 외부 상황이 북한 내부로 더 많이 들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처럼 남한이 헐벗고 굶주리며 남한 주민이 거지 생활을 한다는 등의 선전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북한 사회가 서서히 변화하는 것은 확실하다.

-- 한국의 좌·우파가 북한 인권 문제에서도 이념 대립을 하는데.

▲ 작년 11월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 때 프랑스에서는 국가 위협 앞에서 좌·우 대립이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북한 위협 앞에서 좌·우가 대립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권 문제에 좌·우가 무슨 의미가 있나.

-- 김정은과 그 이전 김일성, 김정일 체제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 주체 유일사상과 노동당 억압 체제를 봤을 때 큰 측면에서 보면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점이 있다. 최근 북한의 농촌 개혁과 인프라 건설, 김정은이 부인과 함께 나타나는 등 미디어 활용 등이 과거와 달라진 변화된 모습이다. 그러나 장성택 처형에서 보듯 김정은이 순한 양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모순적인 면이 있다. 북한이 오는 5월 개최하는 노동당 대회에서 어떤 개혁을 발표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약하긴 하지만 변화의 조짐이 있다.

sungjin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