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제36회 파리도서전’이 베르사유 전시관에서 3월 17일부터 20일까지 성황리에 개최됐다.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전시기간에 그곳을 찾은 프랑스 시민들과 관광객의 숫자가 무려 20여만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가히 세계적인 문학올림픽이라고 하겠다. 특히 이번 전시전에서는 프랑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오드레 아줄라이 문화부 장관까지 참석해 영화나 드라마의 한류를 넘어 문학차원에서도 우리 한국문학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는데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이번 파리도서전은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 130년 기념’으로 주빈국으로 참가하게 됐으며, 55개국 1200개 출판사가 참여했고 한국에서는 대한출판문화협회·한국출판인회의·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한국문학번역원·한국콘텐츠진흥원 등 5개 기관·단체가 ‘새로운 지평’이라는 슬로건 아래 한국의 작가와 출판물·웹툰 등을 홍보했고, 한국관 안에는 프랑스의 대형서점 지베르 조셉 서점에서 운영하는 홍보부스가 마련돼 프랑스어로 번역된 한국 작품 60여종과 한국어 책 500여종을 판매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북한의 솔제니친으로 불리는 북한의 현역 작가 반디 선생의 ‘고발’ 단편집이 프랑스어로 번역돼 사상 첫 세계도서전에 출품했다는 사실인데, 이번 도서전에서의 반응도 뜨거웠다는 게 출판사의 전언이다.
 
‘고발’ 단편집을 프랑스어로 출판하는데 크게 기여한 임영희 박사(파리5대학 교육학 박사, 문학작가)와 멜라니 바스넬(아비뇽대학 번역학과 석사)씨는, 반디 선생의 작품을 번역할 수 있어 큰 영광이었고, 북한에도 작가로서의 비판정신이 살아있는 분이 생존해 계시다는 것에 희망을 잃지 않는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또한 프랑스판 독후감을 작성해주신 역사학자이며 저널리스트인 삐에르 리굴로씨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한국인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11월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와 같은 국가적 위협 앞에서 좌·우파가 없이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미사일 개발 위협에도 좌·우파가 이념 대립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권 문제를 외치는 데 좌·우파가 따로 있겠습니까”라고 소감을 밝히며, “과거 소비에트 연방도 수만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과 미사일 위협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은 북한 주민의 자각이라는 것을 이 책이 보여줍니다”라고 ‘고발’ 단편집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
 
한 가지 더 특이한 사항은 이번 도서전에서 예상치도 못한 큰 사건이 벌어졌는데, 북한 반체제 작가를 대표하는 반디 선생의 ‘고발’ 단편집과, 북한 세습독재정권을 미화하는 데 앞장서는 북한 노동당 소속 415문학창작단 작가들이 체제선전용 단편집을 출품한 것인데, 때 아닌 남북대결(?)이 유럽의 프랑스에서 벌어진 셈이다.  
 
한쪽은 북한주민들의 비참한 인권유린을 멈추게 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반체제소설이고, 다른 한쪽은 북한주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세습독재정권을 미화, 옹호, 찬양하는 소설집이라니 문학의 도시 파리시민들이 어떻게 두 작품을 평가했을지가 사뭇 궁금해진다. 물론 어제까지의 판매, 예약, 방문횟수 등으로 승패가 갈리겠지만, ‘고발’ 단편집이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을 북한당국이, 도서전에 맞춰 이 같은 작품을 내놓은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음직하기에 그 결과가 더욱 기다려진다.
 
사상 첫 해외출판이라는 소중한 성과 앞에서 반디 선생이 꼼꼼히 친필로 쓴 원고지 맨 앞에, 피눈물로 적었을 글귀를 앞으로 출간될 세계의 국민들에게 먼저 소개하고 싶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권력의 주인은 늘 국민이기 때문일 것이다.
 
‘북녘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처럼 거칠어도, 병인처럼 초라하고/ 석기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