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프랑스를 방문하고 돌아온 지금, 4.13 총선 선거까지 무사히 마친 상황에서 잠시 상념에 젖어 본다. 파리의 한 숙소에서 올린 글을 통해 프랑스 방문 목적 중 하나였던 북한의 솔제니친 반디 선생의 프랑스판 출판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뒤로 전한다고 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성의 나라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일이 이번 총선을 계기로 이곳 대한민국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반디 선생의 소설집을 출판하기로 결심한 프랑스 출판사와 번역자에게 소위 한국의 좌파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쓰레기 같은 책을 왜 출판하느냐고 윽박지르며 압력 아닌 압력을 행사했다면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로 받아들일까 아니면 상업적인 노이즈 마케팅 정도로 취급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압력은 사실이었고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것은 조금 더 지켜보자고 의견합의를 보았는데, 프랑스에서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이 취한 행태를 보며 몇 가지 의문점이 들었던 것은, 우선 왜 좌파 지식인들이 프랑스에 오래전부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고, 정작 프랑스 내 지성인들은 한국의 이념갈등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단지 코리아라고 했을 때 꼭 사우스냐 노스냐를 묻는 정도랄까….

16년 전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스페인으로 이동하려고 기차를 타면서 철도 레일 위에 가득 찬 담배꽁초를 보고, 선진국에서 이럴 수 있냐라는 필자의 질문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있어야 그것을 줍는 청소부라는 일자리 하나가 생긴다는 답변에 아연했던 기억말이다. 하지만 16년 이후에 찾은 프랑스는 그나마 그 일자리가 자신들의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공공요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당시의 당당한  주장들은 상당히 누그러진 거 같았지만, 여전히 프랑스는 성장과 분배라는 사회복지의 영원한 숙제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중산층 이상은 자신의 세원이 구체적으로 밝혀지는 것을 꺼리며 현금지출을 선호했고, 심지어 재산을 해외로 돌리며 탈프랑스 행렬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그런 프랑스를 자신들의 이념적, 복지적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게 분명해보였다.

그런 가운데 좌파와 우파의 개념이 프랑스대혁명 당시 의회 의석배치에 따라 명명되었던 단순한 역사적 배경에서 출발한 프랑스인들은, 한류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동방의 자그마한 나라에서 그것도 둘로 쪼개진 가운데 북한이라는 희한한 곳을 두고 좌우의 대립이 극한을 치닫고 있다는 사실에 전혀 문외한인 것은 누구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필자가 만난 프랑스 지성인들은 한반도에서 현재의 북한정권에 우호적인 세력까지 통칭 좌파라고 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전 세계가 규탄하고 있는 봉건체제의 세습독재정권을 지지하는 것이 인권과 자유,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신들에 비추어 좌파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럼 우파는 어떤 세력이냐는 물음에 지금의 남한사회와 같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통일을 원하는 세력이라고 했을 때, 우파는 부패하고 무능하며 파쇼적이라는 기존 인식이 얼마나 잘못됐는가를 탄식하는 모습에 필자 또한 한숨이 절로 나왔었다.

앞서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이 심어둔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 속에 출판에 대한 방해 행태를 잠시 지켜보자고 합의했던 것은, 그런 사이비 지식인에 대한 심판은 남남갈등으로 비쳐질 남한에서 일어날 것이 아니라, 세습독재권력에 의해 노예처럼 살고 있는 북한주민이 깨어나, 고통 받는 자신들이 아니라 인류보편의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철저히 짓밟은 세습독재권력을 오히려 찬양하고 지탱케 해준 남한 좌파 지식인들의 책임과 함께 준엄한 역사의 심판자로 곧 나설 것임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목도한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여야의 의석수와는 상관없이 유엔제재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게 시행되고 있는 지금에 있어 대북제재에 대한 엇박자의 목소리가 대한민국 국회에서 터져 나오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에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공천권을 국민에게라는 거창한 구호 속에, 필자의 고향인 부산에서 새누리당의 현역의원 교체율이 0%인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는 그야말로 대국민사기극이었다. 그런 사기극을 국민들이 먼저 알아채고 표로 심판했으니 얼마나 위대한 국민들인가. 

무상복지에 마음이 가면서도 후대의 미래를 걱정할 줄 아는 우리 국민들이기에 아직은 절망적이지 않다. 또한 무엇보다도 좌파 지식인들이 흐트려 놓은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가능케 할 2천만의 새로운 국민들이 어둠의 땅 북한에서 깨어나고 있다.

과잉 민주주의, 복지 포퓰리즘, 각종 님비주의의 수렁에서 건져줄 신인류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기에 나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