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왔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단편집이다. ‘적기(赤旗)’ 평양특파원으로 북한에서 추방된 1973년 이후 처음이다. 43년 만의 일이다. 과거 북한을 제2의 조국처럼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 환상은 3개월 정도 남짓 지나서 깨지기 시작했다. 

나는 특파원이었기 때문에 북한의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고 싶었다. 이것이 규율위반이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신문’ 간부에게 요해(了解)를 요청했다. “취재에 대해서는 편의(便宜)대로 하라”는 말 뿐이었다. 필자는 평양 교외 초대소에서 연금(軟禁)생활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내게는 한 가지 목적이 더 있었다. 오사카 고교의 동급생으로 1960년 북한으로 귀국한 在日조선인 친구의 소식을 찾고 있었다. 1966년 이후 소식이 두절됐다. 신문기자라면 친구의 소식을 듣는 건 문제가 아닐 거라 여겨 북한 당국에 이를 제기했다. 동시에 일본에서 가져온 주소에 의지해 혼자서 찾으려 나갔다. 이것이 중대한 규율위반이 됐다. 즉 스파이 행위로 간주됐다. 

1973년 2월16일 밤 필자와 아내, 그리고 일본공산당 평양대표 요시다 씨 세 사람이 밖으로 나가 아무도 없는 밤에 사진을 찍었다. 당시의 공포를 늘 지니고 다녔던 수첩에 필자만이 알 수 있도록 암호를 사용해 적었다.

“드디어 발을 들여놓았다. 이것은 미친 짓이다. 그러나 미치면 나는 지는 것이다. 나는 지지 않는다.” 필자는 이렇게 적었다. “무서운 나라, 형무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형무소에는 사상의 자유라도 있다. 생각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곳에는 그런 자유마저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김일성 일색이다.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 등이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무섭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억압. 이로 인해 모두가 순한 양이 되어버린 인민. 화가 난다. 전 국토에 걸쳐 스파이망이 쳐져 있다.” 익월(翌月) 3월10일 나는 퇴거령(退去令)을 받았다.

내게는 11개월 가량의 북한 체험이었지만 일본인으로서는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이런 과거에 비추어볼 때 반디의 《고발》을 보고 “드디어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한 양이 되어버린 인민”이라고 북한 인민을 매도했으나 지금은 목숨을 걸고 체제타도를 고발하는 사람이 나온 것이다. 무언가 그의 싸움을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고발》은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내 자신이 평양에서 겪었던 경험과 일치한다. 신(神)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김일성. 이와 반대로 개벌레 취급을 받아온 인민.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김일성의 거짓말에 속은 주인공의 삶(駿馬의 一生). 김일성의 ‘일호행사’를 위해 열차를 정지시키고 대합실을 닫아버린다. 이로 인해 대혼란이 발생하여 인파에 압도당해 뼈가 부러진 손녀와 허리를 다치게 되는 할머니의 이야기(伏魔殿). 일생 동안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인민의 행복을 위해 봉사한 공장 기사를 총살하는 이야기(붉은 버섯). 김일성의 초상화가 무서워 우는 아이로 인해 수용소로 가는 트럭에 태워지는 一家(유령의 도시).

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던 이야기는 ‘탈북기’였다. 젊은 부부의 이야기로, 남편은 뛰어난 제도공이었으나 노동당 입당이 불가능했다. 이런 신분 차별을 의식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마음이 끌려 결혼을 하게 된 젊은 여성. 그런데 어느날 남편의 조카가 와서 얘기를 들어보니 학급위원이 될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학급위원이 됐다가 취소됐다는 것이다. 부인이 알게 된 사실은 남편의 부친이 해방 이전에 부농(富農)으로 敵對군중으로 낙인찍혔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떤 사소한 실수로 ‘反黨反革命分子’가 되어 사형 당했다는 것이다. 아들이 아무리 우수해도 대학에 입학할 수도 없고 黨員도 될 수 없었다. ‘성분’이라는 계급차별 때문이었다. 조카마저도 학급위원이 취소된 이유가 바로 성분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무 밑에서 눈물을 흘렸다. 어린 아들도 친척 중 한 사람이라도 ‘반당반혁명분자’가 있을 경우 배척당하는 구조였다.

북한 사회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성분’이라고 불리는 계급차별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계급은 있을 수 없다는 착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봉건주의 시대 이상으로 봉건적인 국가가 바로 북한이다. 神과 동일한 김일성과 그 家系. 조선노동당과 국가보위부는 김일성 一族을 지키기 위해 특별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이들 조직원들은 권력을 나누어 위세를 부린다. 그리고 이에 반해 인민은 벌레 취급을 받는다.

북한 당국은 全인구를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핵심계층은 김일성을 비롯한 빨치산 출신자, 그리고 조선노동당원,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유족 등이다. 이들 핵심계층은 13가지로 분류된다. 적대계층은 식민지 시대의 地主, 자본가를 비롯, 親日親美분자, 남한에서 넘어온 자들과 이들의 가족 등 11가지로 분류된다. 이들 핵심계층과 적대계층의 중간에 위치하는 동요계층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미군에 복무했던 사람들, 일본에서 건너온 在日교포들, 그리고 조선노동당에서 제명당한 사람들, 종교관계자 등으로 27가지로 분류된다. 총 51가지로 세분화되어 있다. 이러한 차별정책으로 북한 주민들은 생활전반에 걸쳐 감시와 차별, 그리고 배척을 받는다. 소설 고발에도 계급차별의 모순과 오류가 드러나 있다.

‘양처럼 순한 인민’들 가운데 드디어 북한을 근본적으로 타도시켜야 한다는 작가가 등장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붉은 버섯을, 독을 품은 버섯을 뽑아야 한다. 이 땅에서, 그리고 지구에서, 영원히!” 여기서 붉은 버섯은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는 조선노동당과 봉건적․군사적 탄압이다.

내 자신이 《고발》을 읽고 흥분한 것은 著者의 재능 때문이 아니라 그의 분노 때문이었다. 펜이 아니라 피눈물로 쓴 글이 '고발'이다. 이를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 어떻게든 읽어만 달라는 것이었다. 생명을 걸고 쓴 분노의 작품을 일본에 확산시키는 것이 나의 남은 사명이다.

나는 지난 43년 동안 북한이 붕괴하기를 바라왔으며, 이를 위해 싸워왔다. 붕괴할 것 같으면서도 붕괴하지 않는 북한. 중국과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주변국들은 북한이 붕괴하는 것이 自國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가장 중요한 한국도 국민의 절반 정도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북한의 붕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주변국들이 북한의 붕괴를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붕괴하게 되면 북한 주민이 자유롭게 한반도를 넘나들 수 있게 된다. 자유롭게 출입국을 할 수 있게 된다. 한 사람의 意向에 따라 처벌받지 않아도 된다. 飢餓에 허덕이지 않아도 된다. 기본적 인권이 북한 주민 모두에게 전해진다. 이것이 기본이다. 이런 기본적인 인권이 국민 모두에게 전해지지 않고 있는 이상 북한을 붕괴시키는 것은 선(善)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인 1971년 한국의 시인 김지하의 작품을 일본인으로서는 戰後 처음으로 일본어로 번역해 일본에 소개했다. 당시 나는 ‘적기’ 편집국 기자였다. 나는 김지하가 박정희 독재정권과 충돌하여 결국 죽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김지하를 유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의 시집 등을 모아, 일본의 대형출판사인 ‘중앙공론’에서 일본어로 번역 출판했다.

3년 후인 1974년 나의 예상은 적중하여 김지하는 사형 판결을 받았다. 한국 재판정에서 내 이름이 거명되는 것은 아닌지 매일 가시방석에 앉은 것만 같았다. 일본 공산당의 지원을 받은 사실이 탄로나면 김지하는 반공법에 저촉되어 사형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걸었던 그를 도우려 했던 나의 행동으로 그가 죽게 된다면 내 자신도 죽을 각오를 했다. 김지하의 사형판결과 관련하여 ‘詩人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일본에서 일어나 각국으로 퍼졌다. 이 여론은 내 자신이 김지하의 詩를 번역 출간한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지금도 영광으로 생각한다.

김지하 시인이나 내 자신이나 모두 건강하다. 1993년 김지하를 23년 만에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민주화된 일본 공산당원이 한국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지하와는 지금까지도 친교를 맺고 있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의 旗手들의 대다수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옹호하거나 종북세력이 됐다. 그러나 김지하는 이들과 달랐다. 소위 한국의 민주화 세력에 대해 김지하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이들의 정치형태는 주체성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북한의 정치 특공대로 전락해버렸다.” 김지하야말로 민주화의 입역(立役)자로 한국 현대사에 남을 인물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북한 작가의 소설을 번역하게 됐다. 남한 시인의 작품을 번역해 한국의 독재를 타도하려 했는데, 이제는 북한의 작가의 작품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명예스런 일이다. 이것으로 북한이 붕괴된다면 이만한 영광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은 나 혼자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다. 원역자(元譯者)가 있다. 이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1. 탈북기(白成喆), 2. 유령의 도시(白成喆), 3. 준마의 일생(白成喆), 4. 지척만리(白成喆), 5. 복마전(元智慧), 6.무대(高來れい), 7. 빨간 버섯(白成喆)

이 가운데 2장과 4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을 잡지 ‘납치와 진실’에 게재했다. 그리고 소설 전체를 보면서 일부 오역을 訂正했다. 따라서 오역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있을 수도 있다. 오역을 발견하는 독자는 알려주기 바란다. 어려운 번역을 짧은 시간 내에 해준 상기(上記)의 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일본 독자들은 일본어로 소설을 읽게 될 것이기 때문에 誤譯이 없을 것으로 여길 것이다. 다만 일본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내 자신과 ‘카자히’ 문고 관계자가 손을 댄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중략) 하루라도 빨리 잔악한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하여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