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

벌써 연말이다. 며칠 전 첫눈까지 내렸으니 이제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었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서울에서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층 흥겹게 접할 수 있는 서대문구 홍은동이라는 곳인데, 흔히 논골이라 불리 운다.
아마도 옛날 옛적에 백련산 꼭대기까지 논밭을 이루고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일 텐데, 그곳에서 벌써 20여년을 살았으니 제 2의 고향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겠다. 논골 길을 끝까지 올라가면 막다른 백련산으로 들어서는데, 능선을 따라 올라가지 않고 산을 가로질러 내려가면 바로 은평구가 시작되는 지점이고, 그 아래 천주교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학교가 나온다. 예전의 이름은 소년의 집이다.
축구 국가대표 골키퍼였던 김병지 선수도 이곳 출신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은 꿈나무 마을로 명명된 이곳을 소개하자면, 미국에서 태어난 알로이시오 신부는 1957년 한국전쟁의 상처가 남아있는 부산에 처음 정착하면서 버려진 거리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마리아수녀회를 창립하고 송도 가정원을 개원하였다. 그리고 무료진료소를 운영하던 중, 1970년 첫 번째 소년의 집을 열게 되었다.
한국이름으로 소재건 신부님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소년의 집에서 학교를 운영하였다. 현재까지 한국에서만도 1만 2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작은 소망이 있었다. 신앙의 이유로 꿈나무 마을 학생들의 대부(代父)가 되었지만,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필자도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도 받지 못하고, 대한의 남자라면 모두가 의무적으로 복무해야할 군 입대도 없었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는 그 순간부터 사회로 배출되어 홀로 살아가야할 수많은 꿈나무 마을 학생들이, 누구나 함께 고민하고 누릴 수 있는 뭔가를 같이 부대껴야 한다는 것을 늘 생각했다. 그 첫 번째로 실시한 활동이 필자가 소속된 단체에서 진행된 북한 어린이 생활체험 프로그램에 꿈나무 마을 학생들을 참여하게 하는 것이었다.
비록 평범한 일반가정의 학생들과 달리 힘든 환경에 있지만, 같은 또래의 북한 어린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으며, 무슨 놀이를 하고,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살펴보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첫 시간을 보낼 때 이렇게 인사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꿈나무 마을 학생 여러분들은 누구나 우리사회에 필요한 사람, 기여하는 사람,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보다 더 힘든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북한 어린이들을 걱정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그래서 여러분 중에 꼭 통일대통령이 나올 것’이라고 말이다.
시간은 흘러 그때의 아이들이 사회로의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안타까운 점은 마음껏 꿈꾸며 사회 속에서 자기역할을 펼쳐나갈 아이들이 혼자만의 생활이 낯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이었다.
살벌하고도 낯선 환경 속에 덩그러니 홀로 내팽개쳐졌다는 상실감에 그 소중한 생명을 놓아버린다는 사실이 기가 막힐 따름이었는데 기적은 여기서 일어나고 있었다. 똑같은 과정을 겪고 사회로 나간 선배, 후배들이 삼삼오오 모여 스스로의 작은 동문회를 결성 했다. 우리의 아이들이 혼자가 아니라 이렇게 작게나마 아름다운 길벗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공유하자는 이유하나로 모임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소재건 알로이시오 신부님이 소망했던 작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북한에서 가장 많이 돌보는 일이 있다면 바로 고아원이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현존하는 그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감과 생명의 경외감을 언제나 견지할 수 있도록, 그들 스스로를 존중하는 삶을 살게끔 지원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임무이다. 북한당국의 혹독한 탄압과 온갖 모략 속에서도 그들의 일을 멈추지 않고 순교의 정신으로 매진하고 있다.
어둠의 땅 북한에서 꿈나무 마을 동문들과 같은 기적들이 통일을 향해 들불처럼 번져가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