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

탈북인 3만명 시대를 접하면서 대부분이 동남아 루트를 통해 입국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보면, 몽골이라는 나라는 어느덧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 진 듯이 보여 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몽골은 탈북난민 수용소를 만들자는 국제적인 움직임이 있었던 곳이다. 수많은 탈북민들이 중국을 벗어나 몽골의 사막과 초원, 추위와 싸우며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자유대한민국의 품으로 오게 하는데 피난처의 역할을 해주었던 고마운 나라다.

당시 난민수용소 문제가 국제사회로부터 크게 관심을 받을 무렵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일교포 출신의 북한인권 활동가와 함께 몽골을 방문했을 때 그야말로 ‘북방의 추위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일본인 친구는 여느 식당보다는 북한식당을 찾아서 가고자 했는데,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북한식당에 도착해서 얼었던 몸도 녹이고 주린 배로 채웠을 즈음, 앞쪽 한쪽 예전에는 공연을 했을법한 무대에 노래방 기계만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TV 화면에서는 연신 북한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고산병으로 맥을 못 추던 일본친구가 대뜸 노래를 한곡 하겠다는 것이었다.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얼마든지 해도 좋은데 남조선 노래는 없고 북한노래만 있다는데도 일본인 친구는 자신만만하게 무대로 나가 노래를 선곡했으니, 제목이 바로 ‘조국에서 돈이 왔어요’ 라고 기억된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 자리로 돌아온 친구에게 제목도 신기하고 해서 내용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재일교포 2세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면서 들려준 내용은 ‘일본 재일교포 사회에서는 한글을 자식들에게 배우게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한글을 가르치는 곳이 조총련이 운영하는 민족학교밖에 없었다고 한다. 돈도 없고 타국의 생활에 지친 재일교포들은 공짜로 한글도 가르쳐주고 장학금도 준다는 민족학교에 자녀들을 보냈다. 매년 특정한 날에는 ‘북한에서 돈이 왔다’고 하면서 큰 잔치를 벌이고, 어린학생들에게 북한과 김씨 왕조를 향해 큰 절을 하게끔 했다고 하니 조총련과 북한의 전략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새삼 느꼈었다.

이제 한글날이다. 마침 재일교포 3세들인 300여명의 청년학생들이 모국방문단을 구성해 서울에 왔다. 재외동포재단,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의 후원으로 3박4일간의 방문 행사에서 분단의 현장인 DMZ 탐방, 한일 청년들이 어울리는 K-POP 콘서트 등 모국의 서울을 만끽하는 일정이어서 여간 중요한 의미의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일본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재일교포 청년들 중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인원이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였다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부모의 나라에 찾아와 고민도 하고, 활기에 찬 모습이 대견스러웠지만, 한반도 역사상 한류의 물결이 이렇게 크게 몰아치는 상황에서 재일동포 2, 3세들은 점점 모국어를 잊어가고 있다는 것이 시대적 흐름일까? 아니면 우리의 문제일까,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 멀리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서 구소련에 의해 강제 이주된 고려인 2세, 3세를 위해 한글을 가르쳐 자밀라로 알려진 우즈벡 출신 미녀까지 양성한 세종학교는 나 홀로 독립운동 하듯이 사재를 털어 한류의 기본을 깔아주었고 지금까지 학교를 이어왔다.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제공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이 타국의 시민들도 아닌 제나라 2세, 3세들에게 제대로 된 한글을 가르치려는 의지가 없는데, 한글날 기념을 말할 수 있겠는지, 한글날을 떠올리며 잠시 머리를 숙여본다.
물론 언어나 문화적 가치의 고수 여부는 머나먼 조국보다 개개인의 결심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결심했음에도 제대로 준비된 공간이 마련되어있지 않다면 상황은 또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분단된 대한민국이 통일의 과정으로 나아갈 때, 유럽과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한국을 알고 지원하는 지한파의 양성도 중요하다. 그러나 땔 수 없는 혈연의 고려인, 조선인들이 모국인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북한주민의 인권을 위해 자신의 일처럼 행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의 결심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