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체제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은 북한 소설가의 작품집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간됐다. 이 작가는 현재 북한에 살고 있으며 1950년대에 태어나 북한 문인 단체인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은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 '반디'라는 가명으로 책을 냈다. 북한 작가가 반체제적 내용의 작품을 쓰고 이를 한국에서 펴낸 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원고를 입수한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14일 "탈북자인 반디의 친척이 지난해 초 나를 찾아와 원고 반출을 부탁했다"며 "중국에 사는 지인을 북한에 보내 작가로부터 원고를 넘겨받았다"고 말했다. 책은 '고발'(조갑제닷컴)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주 출간됐으며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의 단편 7편을 수록했다.

1989년 쓴 것으로 보이는 수록작 '탈북기'는 '적대군중'으로 분류된 아버지 때문에 차별을 당해온 남자가 당 간부로부터 남편의 출세를 미끼로 아내가 성(性)상납까지 요구당하는 것을 보며 탈북을 결심하는 내용이다. 또 다른 수록작 '무대'에선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북한을 휩쓴 애도 분위기의 허상을 폭로했다.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 남편을 둔 숙이 어머니는 김일성이 죽자 조의장(弔意場)을 찾아가 통곡한다. 주민들의 조의 태도를 감시하던 보위부원 홍영표는 이를 의외라고 생각한다. 이어지는 아들과의 상상 속 대화에서 그의 아들은 숙이 어머니의 행동을 무대자감(舞臺自感·배우가 극중 인물에 동화되는 상태를 뜻하는 북한 용어)이라고 알려준다. 홍영표는 주민들을 '미친 수령극'에 배우로 동원하는 나라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하다가 권총으로 자살한다. 맨 끝에 수록된 '빨간 버섯'은 당사(黨舍)를 독이 든 '빨간 버섯'으로 규정하고, "저 독버섯을 뽑아버려라. 이 땅에서 아니, 지구 위에서 영원히"라고 절규하는 북한 기자를 등장시켜 북한 정권 타도를 촉구한다.

도 대표는 "북한에선 김일성 때는 살 만했는데 김정일 이후 못살게 됐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데, 김일성 통치 때부터 반체제 작가가 북한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