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망한 북한의 영원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영화광이었다. 살아생전 신상옥, 최은희 부부를 강제납치하면서까지 북한 내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영화계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한계점을 극복해보려고 발악했던 것만 봐도 거의 미치광이에 가까운 영화매니아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아무리 영화를 좋아했다고 해도 하필 김정일에게 영화광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흔히들 어떤 대상이나 관심사에 푹 빠져 헤어나질 못하는 사람을 두고 미칠 광(狂)에 가깝다고 하여 영화광, 독서광 등으로 불렀다.

하지만 김정일은 이 같은 부류의 영화매니아가 아니었다. 김정일이 북한의 후계자로 등장하기까지 수많은 빨치산 전사들, 집안내부의 경쟁자들과 혈투를 벌이며 결국 김일성으로 하여금 봉건세습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후계자로 인정받게 된 것은, 주체사상으로 대변되는 수령독재체제의 정립과 함께 김정일이 보여준 선전선동의 천재적 창발성에 방점을 두었던 것이 아닐까싶다. 그래서 지금도 북한은 조직지도부와 함께 노동당 선전선동부는 가히 수령독재의 전위라고 할 만큼 그 위세는 대단하다.

모든 공산주의나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가 마찬가지였다. 히틀러의 괴벨스는 나치판 타이타닉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작성하고 제작에까지 관여할 정도로 선전선동의 무기로 영화에 주목했다.

꽤 오래전에 청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가 있었는데, 마침 여성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는 과정에서 괴팍하고 돌발적인 행동으로 특히 남성 청년층을 사로잡았던 한류스타 전지현이 주연으로 등장했던 ‘엽기적인 그녀’라는 영화였다.

거의 10여년이 훌쩍 지나 개봉된 영화에는 전지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 주인공인 견우는 그때나 지금이나 순박한 청년의 모습 그대로 등장하는 ‘엽기적인 그녀’ 후속작이 상영됐다.

참으로 충격적인 것은 영화 속의 견우는 지금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청년실업이라는 구렁에서 허우적대는 한 사람으로 취업준비에 지쳐 쓰러지지만, 어릴 적 첫사랑의 도움으로 한국 최고의 통신회사에 입사를 하게 된다. 옥스포드팀이라는 이름으로 출근한 지 몇 개월도 안 되어 동료는 해고되고 견우는 퇴사를 강요받는다. 이들의 입사에는 감춰진 비화가 있었는데, 정부의 강요에 못 이겨 지방대 출신들을 어쩔 수 없이 선발해야 해서 그 회사의 회장이 키우던 강아지가 수많은 입사원서 중에 입에 물고 온 두 사람이 뽑혔고 그 강아지 이름이 옥스포드라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헬조선을 대놓고 거짓선동해 대는 이런 작품에 대한 평가가 청년층에서도 최하위라는 사실이다. 같은 영화감독이라고 해도 자신의 아버지 세대가 살았던 사회주의의 현실을 그나마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던 북한에서, 당시 세대의 이상이었던 사회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는 참으로 가상한 지적호기심을 바탕으로 진행된 북한바로알기 다큐멘터리는, 북한당국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고 차단되지만 감독의 열정적인 비판정신을 피해갈 수는 없었는데, 그래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가 바로 ‘태양 아래’라는 영화이다.

얼마 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씨의 작품을 번역한 데브라 스미스씨가, 약관 28세의 나이로 아주 사소한 문학적 관심에서 한국을 알게 됐다는 인터뷰의 내용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더욱이 기쁜 것은 그런 데브라 스미스씨가 북한의 솔제니친인 작가 반디 선생의 ‘고발’ 작품의 미국판 번역가로 선정됐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현실은 힘겹지만 여전히 지구촌은 희망적이다.